
온갖 울음소리들 사이에서 빠져나온 재현이 안도했다.
"무슨 저런 걸 두고 그래…"
그래도 아까보다는 한껏 나아진 것처럼 보이는 표정에 준영도 안심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내내 등 뒤로 닿은 손이 덜덜 떨려서, 괜히 준영까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었는데.
좁은 길을 걸어가다 준영이 문득 물었다.
"재현."
"어? 뭔데." 재현은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서 다시 심장이 쿵쾅거렸다.
"계단 잘 올라가?"
준영이 멀리 있는 계단을 가리켰다.

왠지 재현은 '친구가 다녀오고 권태기가 나아졌다는 말'을 하던 후배 하나가 불길하게 웃던 게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걔가 말하던 그 친구 결혼식까지 내가 다녀왔는데. 진짜 김선우 이걸 죽여야 하나.
이번엔 재현이 앞장섰다. 체력 하나는 자신있었기 때문에, 준영의 손을 잡고 자신있게 계단을 하나씩 타기 시작했다. 경사가 말도 안 되게 높다 뿐이지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많은 계단도 아니었다. 편한 옷을 입고 왔으면 단번에 빠르게 올라갔을 텐데, 차려입은 탓에 준영과 이야기를 나누며 설렁설렁 올라가게 됐다.
그리고 재현은 이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어느정도 끝이 있는 거리에, 체력을 분배하며 천천히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준영을 위해 중간중간 쉬어야 했기 때문이다. 둘만의 시간을 길게 갖기에는 최적이었다.
체력이 좋은 재현과 준영도 꽤 길게 느껴지는데, 체력 약한 사람끼리 올라간다면 싸우고 화해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하기에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
구두 신은 사람이 오면 처음부터 싸우려나. 이런 대화를 하다 재현은 문득 준영이 조용해진 걸 깨달았다.
"미안." 준영이 사과했다.
"어?"
"내가 너무 느려서 지루하지. … 조금 더 빠르게 올라갈까?"
"전혀."
재현이 웃으며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종일 있고 싶은데? 반 정도 올라왔을까, 준영이 갑자기 털썩 주저앉았다. 잠깐만 쉬었다가 가자. 재현도 별 생각 없이 계단에 걸터앉았는데, 준영이 벗은 신발 뒤꿈치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준영아."
"아니, 오늘… 차려입고 오느라." 확실히 새 신발을 신었다. 발에 맞지 않은 탓에 자꾸 긁힌 것 같다.
"왜 차려입고 왔어. 편하게 오면 되는데." 재현이 지갑을 꺼냈다. 툭하면 긁히는 탓에 안주머니에는 항상 밴드가 들어있었다. 그걸 준영에게 붙여주는데,
"데이트 아니었어?"
재현이 깜짝 놀라 준영을 쳐다봤다. 재현도 오늘 예쁘게 입고 왔잖아.

계단 끝까지 올라왔을 때 작은 방이 있었다.
재현과 준영이 그곳에 들어가려는 차, 카드키가 들어있는 박스는 자물쇠로 잠겨 열리지 않았다.
"솔직히 계단까지 올라왔는데… 또 풀어야 해?"
재현이 칭얼대며 준영에게 달라붙었다. 준영은 귀를 붉히면서도 문제를 읽어나갔다.
"이거 풀면 손 잡을 수 있게 해 줄게."
"손은 방금도 잡았는데. 오늘 계속."
"…… 아무튼."
재현은 준영을 뒤에서 안은 채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